- 사랑한다는 것은 재발률이 높지만 옛날보단 낮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너무 많은 것을 사랑했을 때

 

                                              권영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너무 빨리 옛날이 되고 말 때,

일말의 사심 없이 빗소리를 들을 때

옛날이 참 많았구나 너무 많은 걸 사랑했구나

 

계절 탓이었을 거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으니

그저 왔던 것이고

그쯤 멈춘 것이고

잎 지던 그날과 같이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좀 더 아팠더라면 더 많이 괴로웠다면

옛날이 좀 더디 오지는 않았을까

잎 다 진 가지에 매여 함께 울어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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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을 돌아보는 방법은 되돌아보는 것뒤돌아보는 것일 것이다. 전자는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심리적, 물리적 영역으로 구분은 차치하더라도 지난 일은 시간적 영역에서 볼 때 그 속도는 상대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대를 설정한다면 시소처럼 현재를 가운데에 두고 과거는 구상적(figurative) 무게가 실려 현재보다 아래로 내려가고 미래는 비구상적인(nonfigurative) 무게가 실려 현재보다 위로 올라간다. 둘 다 현재라는 시선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시인은 심리적으로 되돌아보고 물리적으로 뒤돌아보는 옛날에 도깨비바늘처럼 수없이 달라붙었던 사랑을 주섬주섬 떼어내며 독백으로 시효가 만료된 사랑을 삼키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너무 빨리 옛날이 되고 말 때라는 표현은 죽도록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을 쓴 것이 아니고 자해自害에 가깝게 투신投身, 내던져진 것으로 읽힌다. 사랑은 마음과 몸을 내던지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 빨리소실점이 되어가는 것은 인간에겐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빗소리도 천상의 어느 과거일 것이며 과다사랑증후군에 빠져 옛날이 대량 복제複製되어 시인의 가슴에 이식되어 있다.

시인의 표현처럼 계절 탓으로 돌리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그렇다고 종교적 내 탓(mi culpa) 공방도 아닌 그저 왔던 것이고 그쯤 멈춘 것으로 옛사랑의 매무새를 난감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너무 많은 것을 사랑했을 때의 자책, 좀 더 아팠더라면 더 많이 괴로웠다면에서 보이는 사랑에 대한 자존적 메시지가 납득이 된다.

그리하면 옛날은 가는 것, 그러니까 아래로 기울어져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좀 더디 오지는 않았을까처럼 마치 다가오는 것으로 느끼게 할 정도로 환각적으로 치유된다. ‘잎 다 진 가지가 상징하거나 대리하는 시소의 정중앙에서 빗소리보다 더 들썩이며 울어보는 밤이 참 더디게 온다면 좋은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재발률이 높지만 옛날보단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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